4월의 마지막 주, 메이커스캠프 오픈식을 무사히 마치고 4월님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나 2주차부터는 오픈식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엄청 빠르게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도 부지런히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순간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했답니다.
그럼 인터뷰 1편에 이어서 '메이커스캠프의 문을 활-짝 여는 오픈메이커'가 되어보는
하이퍼로컬캠프 [4월]의 이야기 마저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2주간은 메이커스캠프 오픈식을 준비하고 세팅하고, 운영하느라 분주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알차게 잘 놀기도 했던 것 같지만(웃음). 지난 2주간의 일상을 되돌아보죠. 1주차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일상을 들려주세요.
1주차때는 지역을 많이 알아보고 캠핑처럼 엄청 다양한 걸 했던 것 같아요. 2주차 때부터는 이제 제대로 오픈식을 기획하는 단계에 돌입했는데 그렇다고 엄청나게 빡빡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특히 2주차부터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생긴편이라 혼자 버스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혼자 유람선 타고 외도에 가기도 하고 되게 혼자서 이것저것 많이 해볼 수 있었던 기간이었어요. 마지막 3주차에는 저만의 미션이 하나 생겼었어요. 동네 오락실에 가서 농구게임도 하고(웃음)... 그런 일상을 보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미션이었나요?
제가 오락실에서 농구게임 하는 걸 좋아하는데 장승포에는 오락실이 없는 줄 알았는데 지나가다 보니까 있는거예요. 현금 1만원을 1천 원짜리 10장으로 바꿔서 매일 오락실에 가고, 거기서 농구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산책하다가 오락실에 가서 하루에 2천원을 쓰는거죠. 농구 한 판하고, 코인 노래방가서 딱(?) 하고.
사실 장승포에도 있을 건 다 있거든요. (이곳을 잘 모르는 사람입장에서)편의시설에 대한 걱정을 하시곤 하거든요. 마트는 있냐, 편의점은 있냐… 등. 놀랍게도 있을건 다 있고, 심지어 코인노래방도 있죠. 게다가 10분이면 버스를 타고 스*벅스도 갈 수 있고요. 그러면 어찌되었든 저희가 ‘메이커스캠프 오픈식 준비’라는 미션을 가지고 3주간 살아보셨어요. 메이커스캠프 오픈식이 이번 4월 하이퍼로컬캠프의 시작이자 끝이죠. 메이커스캠프 오픈식 준비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나요?
2주차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2주차 월요일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 1차 회의 때는 아이디어를 공유했어요. 대상, 목적을 구체화하려고 했고. 그래서 초반에는 기획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고, 두 번째 회의부터 콘텐츠가 구체적으로 나왔어요. 또 쏜바님이 하나의 문서에다가 서로 비슷한 부분(아이디어)들을 묶어주시면서 정리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프로그램 기획하고 운영하는 건 해봤는데 전시는 처음이거든요. 그래도 기존에 가지고 계신 서류 양식들이나 디자인 툴이 있으니까 옆에서 보고 많이 배우기도 했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예를들어 체크리스트를 작성할 때도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하는 게 아니라 이전에 작성한 사례들을 보여주시고 이런식으로 하면된다고 가이드를 해주셔서 머릿속으로도 정리가 되고, 전 제일 좋았던 점이 그거였어요. 어찌되었든 콘텐츠를 구체화해서 ‘여기에는 이런 걸 하자’같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걸 듣고 동선을 제안해주시기도 하고,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시기도 해서 도움이 많이되었어요. 실제 오픈식 준비과정에서 생각했던 거랑 거의 그대로 나온 것 같아서 되게 순조롭게 진행했던 것 같아요. 결국 쏜바님 칭찬을 계속하게 되는…(웃음).
갑자기 부끄러워지네요.(웃음) 칭찬들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감사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프로그램 기획하고 운영하는 건 해보셨는데 오픈데이처럼 큰(?)행사는 처음이신거네요. 로컬호스트로서 저는 러닝메이트처럼 최대한 옆에서 많은 것들을 진행하려고 했고, 사실 기존의 서류 양식, 디자인 툴을 활용하게 된 배경에는 3주라는 현실적인 기간을 고려했던 것도 있었죠. 그렇다면 오픈식을 함께 준비하고 운영해보신 소감도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워크숍 같은 걸 기획하고 운영해보고 한 적은 있는데 사실 오픈식 준비하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건 전시였어요. 다만 나름대로 준비하고, 기대했던 바가 있는데 그에 비해서는 먹거리, 이벤트에만 포커스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아웃도어 아일랜드 이야기, 캠핑존 등 우리의 활동들(전시회)에 관해서는 비교적 공감을 많이 얻지 못한 것 같아서 이런 거는 약간 아쉬움이 남긴해요. 마음같아서는 비대면 홍보라도 하고 싶고… 그래도 준비하는 과정은 재미있었고 오픈데이 당일에도 시간이 후다닥 지나간 것 같아서 되게 뜻깊었던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기획하면서 저희가 타깃을 구분하긴 했었죠. 크게 동네 주민분들, 그리고 메이커스캠프가 하는 활동 혹은 비슷한 분야 일에 관심있는 분들로. 다만 홍보가 발빠르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죠. 전시의 경우 현재로서는 바로 체감되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업사이클링, 재활용… 다 좋은데 말 그대로 ‘좋은 일’ 정도였던거죠. 앞으로는 그 속의 의미를 보다 쉽게,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게 미션일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하이퍼로컬 지역살이도 마지막이에요. ‘4월이’에서 ‘혜민’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죠. 3주간 혜민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곳에서의 3주가 엄청 성장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사실 퇴사하고나서 ‘아 그냥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오긴했었는데 여기와서 진짜 많이 여유가 생겼고, 스스로도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서 좋았고요. 그리고 가장 큰 게 저는 원래 타인을 엄청 신경쓰는 편이라 혼자 있는 것도 안 좋아했어요.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랑 같이 있어야 하고, 서울에서는 혼자 식당을 가서 밥을 먹는 적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곳(장승포)에 와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가 않더라고요.
저는 이곳에서의 3주가 엄청 성장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 인터뷰 내용 중
심지어 그냥 더 편안하고. 주변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냥 나 혼자 노래 듣고, 나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느낀 건 ‘내가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거였어요. 최근에는 혼자 유람선 타고 외도도 가고, 혼자 버스타고 예쁜 카페 찾아다니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밥 먹고 하는 게 되게 편안했어요. 혼자하면 좋은 점들도 있었고요. 밥을 먹으면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거나, 타인이랑 있으면 말을 걸고 신경을 써야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안해도 되니까 좋았던 것 같고. 그만큼 독립심도 더 커진 느낌이에요. 아마 서울로 돌아가게되면 친구들이 너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오픈데이 때 하이퍼로컬 3월 참가자인 다솜님(이하 ‘삼월님’)이 방문하셨어요. 삼월님도 주변에서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삼월님이랑 대화도 하시던데 어떠셨나요?
제가 원래 낯가림이 별로 없어서 반갑게 (삼월님이랑)이야기하는데 소소한 것부터 더 맞는 거예요. 각각 3월, 4월 하이퍼로컬 경험을 따로 했지만 서로의 경험에서 일치하는 게 많았어요. 성향은 다르더라도… 예를들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밤에 이 거리를 걷고 그랬는데 막 삼월님도 자기도 그랬다면서 이야기하고 그런 공감되는 부분이 많으니까 많이 친해졌어요. 삼월님도 여기(장승포)가 되게 그리웠다고 하더라고요. 장승포에서 생활을 하다가 (살던 곳인)대구에 딱 도착했는데 숨이 막히더래요. 장승포에는 높은 건물도 별로 없고, 다 트여있고 앞에 바다, 뒤에 산인데다가, 아침에 닭 소리 들리고 새소리 들리고 그러는데 뭔가 거기(대구)에서는 항상 교통편도 사람으로 가득하고, 그런 느낌이니까 답답했데요. 저도 아마 돌아가면 한 달 뒤에 다시 한 번 여기에 또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움’과 연결지어서 이야기해볼게요. 이곳에서 엄청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스스로에 대한 의외의 면들을 많이 보셨는데 이곳을 떠나고 나면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나요?
사실 진짜 많은데…소소하게 이곳에서 산책할 수 있는 거, 혼자 (숙소 방안에서)맥주 마시는 거, 밤늦게 나갈 수 있다는 것. 특히 제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보니까 밤늦게 산책나간다고 하면 위험하게 왜 나가냐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게(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되게 많은데 캠핑가서 부침개 만들어주신거요. 그것도 되게 재미있었고 카라반에서 자본 것도. 주막 포차 사장님이랑 술 먹은 것도요. 진짜 가게 사장님이랑 어떻게 술을 먹겠어요. 근데 (여기서는)그냥 자연스럽게 가서 같이 술먹는 거(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윤개공원에 혼자 갔던 것. 비 맞으면서 망산 트레킹 한 거.
그리고 서핑! 제가 사실 진짜 물을 무서워해서 평소 같으면 친구들이 서핑 가자하면 절대 안하거든요. 근데 처음에 제가 여기 왔을 때도 ‘뭐든 다 경험해보고 싶다’라고 했었죠. 서핑은 큰 도전이긴했는데 일단 물에 들어가서 패들보트 위를 짚기라도 한 것도 저는 스스로 엄청 뿌듯해요. 입주 첫날 옥상에서 캠핑 한것도 처음이었는데 해산물을 엄청 많이 먹었던 것, 공유주방에서 요리해봤던 것도요. 저는 거의 이방인이잖아요. 따지고 보면 서울에서 멀리, 혼자 아무도 없는 연고 없는 곳에 와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이걸(메이커스캠프 오픈식) 기획하고 운영했다는 게 진짜 좋았던 것 같고… 동네 음식점을 갔는데 사장님이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기억에 남는 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변화’하니까 인식에 대한 부분도 궁금해요. 처음에는 장승포의 어떠했고, 지금 3주간 사신 장승포의 느낌은 어떤가요? 장승포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이곳에 온 것도 제가 장승포에 오기전에 목포를 갔다왔었는데, 처는 ‘청년마을’이라는 거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처럼 지방에서 (서울로)올라와 학교를 다니고 있다가 서울에서 너무 살기 힘들면 ‘그냥 나 여기서 30살까지 일하고 고향집 내려가서 지내려고’라고 하는데 저는 고향집이라는 게 없거든요. 고향집이 서울이니까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애초에 쉴 공간이 지방, 지역(로컬)이다보니 저도 한 번쯤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사실 옛날에는 지역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전 항상 ‘서울’, ‘무조건 난 교통이 편리한 서울’이라고 하면서 성격도 급하니까 서울에서 살아야겠다 했는데 남자친구가 완주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그 삶이 되게 평온하고, 욕심을 많이 안부리게 되는 것 같은거예요.
본래 효율을 엄청 추구하고, '난 뭐든 남들보다 빨리할거야'라는 게 있었는데,
지역(로컬)에서는 그런 경쟁보다 '다 같이 하자'라는 게 더 큰 것 같았어요 - 인터뷰 내용 중
본래 효율을 엄청 추구하고, 난 뭐든 남들보다 빨리할거야라는 게 있었는데 지역에서는 그런 경쟁보다 '다 같이 하자'라는 게 더 큰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기 와보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원래 장승포를 잘 몰랐는데 일단 장승포를 떠올렸을 때는 서울에서 교통편을 찾아봤는데 너무 먼거예요. 게다가 비행기를 탄 다음에 다시 버스를 탄다는 거예요. ‘여긴 도대체 얼마나 시골일까.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야?’했는데 정작 와보니 바로 옆에 우체국, 편의점, 약국도 다 있고, 마트, 다이*도 다 있는 거예요. 햄버거 배달도 시킬 수 있고, 별로 (도시의 삶과)다를 게 없었어요. 경기도랑 크게 다를 게 없는 느낌? 그래서 이곳에 와서는 ‘지역에서 이렇게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서는 잘 살 수 있겠다.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애초에 강군님이랑 임도사님도 아웃도어 아일랜드 지역살이 참여자였는데 이렇게 정착해서 살고 계신 걸 봤는데 두 분에 되게 행복해 보이셨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것도 되게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좋습니다. 고향이 하나 생긴 느낌이네요. 1주차 설문에서 3주뒤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주셨는데요, 특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실천과 행동으로 뭐든 보여주자!’라고 해주셨죠. ‘나중에 후회자말고’라고 까지 덧붙여주셨습니다.(웃음) 스스로도 후회없는 3주였나요?
잘 지킨 것 같아요. 기특하네.(웃음)
네, 스스로도 후회 없는 3주였던걸로…(웃음). 공유를위한창조의 연례행사인 ‘꿈 워크숍’에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프로그램이었죠. 어떤 내용을 발표하셨는지, 그리고 소감은 어떠한지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꿈 워크숍’이라고 했을 때 정말 꿈이라는 게 어려웠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슬픈거에요. 뭔가 초등학생 때 ‘꿈이 뭐야?’라고 하면 진짜 항상 막 대통령이 되고 싶어,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랬다고 치지만 지금의 꿈은 더 깊게 고민해야돼서 그런지 꿈을 모르겠는 거에요. 그래서 ‘일단 나는 나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해보자!’해서 꿈 워크숍 때 제가 발표한 내용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관심 있는 게 뭔지, 나의 성향은 어떤지, 나의 특징은 뭔지… 그리고 현재 나의 상태는 어떤지. 결론적으로 내가 원하는 꿈은 뭔지 이야기했어요.
꿈 발표당시에는 일단 제 꿈을 ‘그냥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사실 그게 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행복하게 사는 게 그냥 나의 최종 삶의 목적이고 방향이지 그게 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꿈을 찾자는 생각이 있긴해요. 꿈 워크숍하면서 좋았던 점은 어찌되었든 저에 대해 깊게 생각을 계속 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저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은 안했는데 응진님이 본인에 대해 되기 잘 알고 계시네요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본래 저에 대한 확신을 많이 갖지 못했는데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가보다’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일을 할 때 열정도 있고,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게 있는데 1, 2년 지나고나면 기계처럼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방향을 상실해버리는 느낌. 근데 이번에 꿈 워크숍을 알게 되었으니 그럴 때마다 한 번씩 스스로 생각을 해보면 약간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을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봐줬다는 점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꿈 워크숍이 기존 계획에 없었음에도 진행했던 건 같이 무언가를 함께 해야하는데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이전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호흡을 맞춰서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거라보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프로젝트 기획 이전에 필요한 절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이어서 다음주면 [5월]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어요. 특히 5월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콜라보’, ‘협업’이에요. 4월에 먼저 지역에서의 협업을 경험해보신 입장에서 5월님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조언이라고 한다면… 사실 지역에서는 제 또래보다 나이가 좀 더 높은 분들이랑 만날 기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열린 마음이 진짜 필요한 것 같고, 그리고 뭔가 딱딱 정확하게 나눠서 진행한다기 보다는 그냥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먼저 찾는 것. 그리고 먼저 제안하는 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해져 있는 대로만 하려고 하면… 사실 정해져 있는 건 거의 없으니까(웃음) 서로 아이디어를 내며 수동적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하려고 해야될 것 같아요. 특히 5월은 괴산팀과 함께 시도하는 거니 협업하는 관계가 더 많아질 거 잖아요? 그래서 그 다양한 사람들이랑 다양한 활동을 하려면 진짜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뭔가 이렇게 딱 칼 같이 하기보다는 서로 공유하면서 한다면 다툼없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들어요.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먼저 찾는 것. 그리고 먼저 제안하는 거나,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 인터뷰 내용 중
'협업'하니까 추가로 질문을 드려보면, 서울에서 생활하실 때도 사이드 프로젝트로 협업을 해보셨잖아요. 그간 해왔던 협업경험과 장승포에서의 협업경험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자료조사하는 사람, 뭐 하는 사람 이렇게 딱딱 정하고 했었거든요. 근데 여기에서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뭔가 다 같이 일단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다 같이 뭔가 하고, 그 필요에 의해서 네가 잘하는 건 네가하고 약간 그렇게 나눠지는 느낌이라… 그 이전에 협업을 했을 때는 딱 역할을 나누고 시작했는데 결국 소통이 잘 안됐었고, 팀원 중에 두 명은 그만둬서 남은 사람들끼리 다시 해야하다보니 결국 그냥 같이 다 하게 되어버린거죠. 뭔가 업무 분장이 칼 같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어느정도 초반에 (눈높이, 호흡이)다져진 다음에 서로에 대해 알고 그 다음에 업무 분장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해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제가 잘하는 건 이거예요.’하면서 나누는 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메이커스캠프의 문을 활-짝 열었으니, 이제 크고 작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지 않을까합니다. 앞으로의 메이커스캠프는 어떤 공간이 되면 좋을지, 그리고 어떤 분들이 오면좋을지… 오픈메이커 4월님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진짜 다 같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 인터뷰 내용 중
일단 이곳(메이커스캠프)이 청년 공간이긴 하잖아요. 사실 제가 이곳에서 근처를 돌아봤을 때 장승포는 청년들이 모일 만한 놀거리나 장소가 부족한 것 같았어요. 어찌되었든 메이커스캠프가 그 시작점이니 분명 이 지역에도 청년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청년들이 커뮤니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실크스크린, 미싱할 줄아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걸 활용해서 동네에서 플리마켓을 한다던지… 서로의 재능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아니면 친목도모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고 해서 시도해봐도 되는 거고요. 사실 청년들뿐만 아니더라도 나이드신 분들 중에서도 미싱을 다룬다던지 등 능력이 있으신데 은퇴하고 쉬고 계신 분들이 있을텐데 그런 분들이 ‘누구나 선생님’처럼 강사가 되어서 원데이 클래스나 재능기부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재능기부를 청년들이 수강해도 되는 거고요. 뭔가 그런게 활성화 되면 좋겠어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진짜 다 같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그럼 3주간 함께했던 로컬호스트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to. 밗본 :
밗본님은 제 기준이지만 넌무 멋있으세요. 삶이. 진짜 멋있어요. 그리고 밗본님이랑 얘기를 하면 내용이 어려울 때가 많긴 하거든요. 근데 그 어려움이 기분 나쁜 어려움이 아니라 계속 물음표에요. 밗본님이랑 대화하고 숙소로 돌아가면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겨서 계속 생각을 하게되는 거예요. 전 이런 게 되게 좋거든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단 말이에요. 뭔가 내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워주는 사람? 심지어 말도 많이 재미있게 해주시잖아요. 저는 밗본님, 쏜바님이랑 셋이서 술 먹었을 때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결론은)밗본님은 진짜 멋있으시다!(웃음)
to. 응진 :
나이를 듣고 정말 놀랐는데 이 일을 정말 일찍 시작하신거잖아요. 심지어 막 이 일을 시작하셨을 당시인 8, 9년전에는 지역활성화라는 영역은 거의 무(無)상태였을 것 같거든요. 거의 불모지인거죠. 근데 부산에서 일을 시작해서 장승포라는 곳에 거점을 두고 하시는 게 진짜 멋있는 것 같고, 꿈 발표를 하실 때도 계속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현실에 안주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꿈 워크숍 때 ‘가슴 뛰는 일을 찾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실 그말을 들으면서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근데 대표님이시다보니 전화하고, 바쁘셔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좀 아쉬웠어요.
to. 강군 :
사실 강군님하면 ‘망산’밖에 안 떠올라서 ㅋㅋ… 처음에는 강군님 표정이 별로 없으셔서 약간 무섭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은근 계속 챙겨주시려하고, 어찌되었든 망산이 저한테는 되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힘들어서 기억에 남는 것도 있는데 편한 길을 갔더라면 이렇게까지 기억에 남지는 않았겠죠. 산을 올랐다가 내려갔다가 반복하는데 비도 맞으면서 했잖아요. 근데 그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산행 끝나고 엄지발가락에 멍이 들었는데 ‘헐 어떡해’가 아니고 ‘기특해’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영광의 상처같았고, 심지어 아프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유혜민 그래도 한 번 했네’라는 느낌에 가까웠고, 그래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신 강군님, 감사합니다.
to. 도사 :
도사님이랑은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도 나중에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찌되었든 그때 종현님이 해주신 이야기들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고, 공감도 되었어요. 지금 새로운 걸 하고 계시잖아요? 저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상태이지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은 없거든요. 도사님도 아이템이 구체적으로 없었고 구체화하는데 오래걸렸는데 진짜 하시고 싶은 게 생기니까 엄청 바로 팍하고 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뭔가 한 번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고. 또 낚시 갔을 때도 그렇고 잘 챙겨주시려고 해주셔서 다들 감사하네요.
to. 쏜바 :
쏜바님이랑 시간을 진짜 많이 보낸 것 같아요. 오픈식 준비하면서도 가장 많이 시간을 보냈고 얘기도 많이 하고 했는데 일단 쏜바님도 멋있어요. 사실 저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잖아요. 근데 일 경력으로만 거의 4년차이시고 사실 뭔가 저는 일을 하면 막 정해서, 순서에 맞춰서 해야하고 미리미리 해야되고 그런게 엄청 강했는데 쏜바님이 ‘그냥 하면되죠’하면서 뚝딱뚝딱 바로 뭔가 나오고, 전시 판넬도 뚝딱나오고 되게 순차적으로 타다다다닥 나와서 사실 그점이 되게 멋있었어요. 그래서 일당백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쏜바님이 일러스트레이터(디자인툴) 프로그램 쓰는 거 보니까 저도 너무 배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서울 돌아가면 학원에서 배워야지 하면서 벌써 등록도 했고, 어찌되었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것 같아요.
▶▶ 「 하이퍼로컬-지역살이 : [4월]님으로부터 」 끝
4월의 마지막 주, 메이커스캠프 오픈식을 무사히 마치고 4월님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나 2주차부터는 오픈식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엄청 빠르게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도 부지런히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순간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했답니다.
그럼 인터뷰 1편에 이어서 '메이커스캠프의 문을 활-짝 여는 오픈메이커'가 되어보는
하이퍼로컬캠프 [4월]의 이야기 마저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2주간은 메이커스캠프 오픈식을 준비하고 세팅하고, 운영하느라 분주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알차게 잘 놀기도 했던 것 같지만(웃음). 지난 2주간의 일상을 되돌아보죠. 1주차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일상을 들려주세요.
1주차때는 지역을 많이 알아보고 캠핑처럼 엄청 다양한 걸 했던 것 같아요. 2주차 때부터는 이제 제대로 오픈식을 기획하는 단계에 돌입했는데 그렇다고 엄청나게 빡빡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특히 2주차부터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생긴편이라 혼자 버스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혼자 유람선 타고 외도에 가기도 하고 되게 혼자서 이것저것 많이 해볼 수 있었던 기간이었어요. 마지막 3주차에는 저만의 미션이 하나 생겼었어요. 동네 오락실에 가서 농구게임도 하고(웃음)... 그런 일상을 보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미션이었나요?
제가 오락실에서 농구게임 하는 걸 좋아하는데 장승포에는 오락실이 없는 줄 알았는데 지나가다 보니까 있는거예요. 현금 1만원을 1천 원짜리 10장으로 바꿔서 매일 오락실에 가고, 거기서 농구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산책하다가 오락실에 가서 하루에 2천원을 쓰는거죠. 농구 한 판하고, 코인 노래방가서 딱(?) 하고.
사실 장승포에도 있을 건 다 있거든요. (이곳을 잘 모르는 사람입장에서)편의시설에 대한 걱정을 하시곤 하거든요. 마트는 있냐, 편의점은 있냐… 등. 놀랍게도 있을건 다 있고, 심지어 코인노래방도 있죠. 게다가 10분이면 버스를 타고 스*벅스도 갈 수 있고요. 그러면 어찌되었든 저희가 ‘메이커스캠프 오픈식 준비’라는 미션을 가지고 3주간 살아보셨어요. 메이커스캠프 오픈식이 이번 4월 하이퍼로컬캠프의 시작이자 끝이죠. 메이커스캠프 오픈식 준비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나요?
2주차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2주차 월요일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 1차 회의 때는 아이디어를 공유했어요. 대상, 목적을 구체화하려고 했고. 그래서 초반에는 기획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고, 두 번째 회의부터 콘텐츠가 구체적으로 나왔어요. 또 쏜바님이 하나의 문서에다가 서로 비슷한 부분(아이디어)들을 묶어주시면서 정리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프로그램 기획하고 운영하는 건 해봤는데 전시는 처음이거든요. 그래도 기존에 가지고 계신 서류 양식들이나 디자인 툴이 있으니까 옆에서 보고 많이 배우기도 했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예를들어 체크리스트를 작성할 때도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하는 게 아니라 이전에 작성한 사례들을 보여주시고 이런식으로 하면된다고 가이드를 해주셔서 머릿속으로도 정리가 되고, 전 제일 좋았던 점이 그거였어요. 어찌되었든 콘텐츠를 구체화해서 ‘여기에는 이런 걸 하자’같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걸 듣고 동선을 제안해주시기도 하고,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시기도 해서 도움이 많이되었어요. 실제 오픈식 준비과정에서 생각했던 거랑 거의 그대로 나온 것 같아서 되게 순조롭게 진행했던 것 같아요. 결국 쏜바님 칭찬을 계속하게 되는…(웃음).
갑자기 부끄러워지네요.(웃음) 칭찬들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감사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프로그램 기획하고 운영하는 건 해보셨는데 오픈데이처럼 큰(?)행사는 처음이신거네요. 로컬호스트로서 저는 러닝메이트처럼 최대한 옆에서 많은 것들을 진행하려고 했고, 사실 기존의 서류 양식, 디자인 툴을 활용하게 된 배경에는 3주라는 현실적인 기간을 고려했던 것도 있었죠. 그렇다면 오픈식을 함께 준비하고 운영해보신 소감도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워크숍 같은 걸 기획하고 운영해보고 한 적은 있는데 사실 오픈식 준비하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건 전시였어요. 다만 나름대로 준비하고, 기대했던 바가 있는데 그에 비해서는 먹거리, 이벤트에만 포커스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아웃도어 아일랜드 이야기, 캠핑존 등 우리의 활동들(전시회)에 관해서는 비교적 공감을 많이 얻지 못한 것 같아서 이런 거는 약간 아쉬움이 남긴해요. 마음같아서는 비대면 홍보라도 하고 싶고… 그래도 준비하는 과정은 재미있었고 오픈데이 당일에도 시간이 후다닥 지나간 것 같아서 되게 뜻깊었던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기획하면서 저희가 타깃을 구분하긴 했었죠. 크게 동네 주민분들, 그리고 메이커스캠프가 하는 활동 혹은 비슷한 분야 일에 관심있는 분들로. 다만 홍보가 발빠르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죠. 전시의 경우 현재로서는 바로 체감되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업사이클링, 재활용… 다 좋은데 말 그대로 ‘좋은 일’ 정도였던거죠. 앞으로는 그 속의 의미를 보다 쉽게,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게 미션일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하이퍼로컬 지역살이도 마지막이에요. ‘4월이’에서 ‘혜민’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죠. 3주간 혜민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곳에서의 3주가 엄청 성장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사실 퇴사하고나서 ‘아 그냥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오긴했었는데 여기와서 진짜 많이 여유가 생겼고, 스스로도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서 좋았고요. 그리고 가장 큰 게 저는 원래 타인을 엄청 신경쓰는 편이라 혼자 있는 것도 안 좋아했어요.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랑 같이 있어야 하고, 서울에서는 혼자 식당을 가서 밥을 먹는 적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곳(장승포)에 와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가 않더라고요.
심지어 그냥 더 편안하고. 주변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냥 나 혼자 노래 듣고, 나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느낀 건 ‘내가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거였어요. 최근에는 혼자 유람선 타고 외도도 가고, 혼자 버스타고 예쁜 카페 찾아다니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밥 먹고 하는 게 되게 편안했어요. 혼자하면 좋은 점들도 있었고요. 밥을 먹으면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거나, 타인이랑 있으면 말을 걸고 신경을 써야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안해도 되니까 좋았던 것 같고. 그만큼 독립심도 더 커진 느낌이에요. 아마 서울로 돌아가게되면 친구들이 너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오픈데이 때 하이퍼로컬 3월 참가자인 다솜님(이하 ‘삼월님’)이 방문하셨어요. 삼월님도 주변에서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삼월님이랑 대화도 하시던데 어떠셨나요?
제가 원래 낯가림이 별로 없어서 반갑게 (삼월님이랑)이야기하는데 소소한 것부터 더 맞는 거예요. 각각 3월, 4월 하이퍼로컬 경험을 따로 했지만 서로의 경험에서 일치하는 게 많았어요. 성향은 다르더라도… 예를들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밤에 이 거리를 걷고 그랬는데 막 삼월님도 자기도 그랬다면서 이야기하고 그런 공감되는 부분이 많으니까 많이 친해졌어요. 삼월님도 여기(장승포)가 되게 그리웠다고 하더라고요. 장승포에서 생활을 하다가 (살던 곳인)대구에 딱 도착했는데 숨이 막히더래요. 장승포에는 높은 건물도 별로 없고, 다 트여있고 앞에 바다, 뒤에 산인데다가, 아침에 닭 소리 들리고 새소리 들리고 그러는데 뭔가 거기(대구)에서는 항상 교통편도 사람으로 가득하고, 그런 느낌이니까 답답했데요. 저도 아마 돌아가면 한 달 뒤에 다시 한 번 여기에 또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움’과 연결지어서 이야기해볼게요. 이곳에서 엄청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스스로에 대한 의외의 면들을 많이 보셨는데 이곳을 떠나고 나면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나요?
사실 진짜 많은데…소소하게 이곳에서 산책할 수 있는 거, 혼자 (숙소 방안에서)맥주 마시는 거, 밤늦게 나갈 수 있다는 것. 특히 제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보니까 밤늦게 산책나간다고 하면 위험하게 왜 나가냐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게(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되게 많은데 캠핑가서 부침개 만들어주신거요. 그것도 되게 재미있었고 카라반에서 자본 것도. 주막 포차 사장님이랑 술 먹은 것도요. 진짜 가게 사장님이랑 어떻게 술을 먹겠어요. 근데 (여기서는)그냥 자연스럽게 가서 같이 술먹는 거(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윤개공원에 혼자 갔던 것. 비 맞으면서 망산 트레킹 한 거.
그리고 서핑! 제가 사실 진짜 물을 무서워해서 평소 같으면 친구들이 서핑 가자하면 절대 안하거든요. 근데 처음에 제가 여기 왔을 때도 ‘뭐든 다 경험해보고 싶다’라고 했었죠. 서핑은 큰 도전이긴했는데 일단 물에 들어가서 패들보트 위를 짚기라도 한 것도 저는 스스로 엄청 뿌듯해요. 입주 첫날 옥상에서 캠핑 한것도 처음이었는데 해산물을 엄청 많이 먹었던 것, 공유주방에서 요리해봤던 것도요. 저는 거의 이방인이잖아요. 따지고 보면 서울에서 멀리, 혼자 아무도 없는 연고 없는 곳에 와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이걸(메이커스캠프 오픈식) 기획하고 운영했다는 게 진짜 좋았던 것 같고… 동네 음식점을 갔는데 사장님이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기억에 남는 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변화’하니까 인식에 대한 부분도 궁금해요. 처음에는 장승포의 어떠했고, 지금 3주간 사신 장승포의 느낌은 어떤가요? 장승포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이곳에 온 것도 제가 장승포에 오기전에 목포를 갔다왔었는데, 처는 ‘청년마을’이라는 거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처럼 지방에서 (서울로)올라와 학교를 다니고 있다가 서울에서 너무 살기 힘들면 ‘그냥 나 여기서 30살까지 일하고 고향집 내려가서 지내려고’라고 하는데 저는 고향집이라는 게 없거든요. 고향집이 서울이니까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애초에 쉴 공간이 지방, 지역(로컬)이다보니 저도 한 번쯤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사실 옛날에는 지역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전 항상 ‘서울’, ‘무조건 난 교통이 편리한 서울’이라고 하면서 성격도 급하니까 서울에서 살아야겠다 했는데 남자친구가 완주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그 삶이 되게 평온하고, 욕심을 많이 안부리게 되는 것 같은거예요.
본래 효율을 엄청 추구하고, 난 뭐든 남들보다 빨리할거야라는 게 있었는데 지역에서는 그런 경쟁보다 '다 같이 하자'라는 게 더 큰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기 와보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원래 장승포를 잘 몰랐는데 일단 장승포를 떠올렸을 때는 서울에서 교통편을 찾아봤는데 너무 먼거예요. 게다가 비행기를 탄 다음에 다시 버스를 탄다는 거예요. ‘여긴 도대체 얼마나 시골일까.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야?’했는데 정작 와보니 바로 옆에 우체국, 편의점, 약국도 다 있고, 마트, 다이*도 다 있는 거예요. 햄버거 배달도 시킬 수 있고, 별로 (도시의 삶과)다를 게 없었어요. 경기도랑 크게 다를 게 없는 느낌? 그래서 이곳에 와서는 ‘지역에서 이렇게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서는 잘 살 수 있겠다.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애초에 강군님이랑 임도사님도 아웃도어 아일랜드 지역살이 참여자였는데 이렇게 정착해서 살고 계신 걸 봤는데 두 분에 되게 행복해 보이셨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것도 되게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좋습니다. 고향이 하나 생긴 느낌이네요. 1주차 설문에서 3주뒤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주셨는데요, 특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실천과 행동으로 뭐든 보여주자!’라고 해주셨죠. ‘나중에 후회자말고’라고 까지 덧붙여주셨습니다.(웃음) 스스로도 후회없는 3주였나요?
잘 지킨 것 같아요. 기특하네.(웃음)
네, 스스로도 후회 없는 3주였던걸로…(웃음). 공유를위한창조의 연례행사인 ‘꿈 워크숍’에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프로그램이었죠. 어떤 내용을 발표하셨는지, 그리고 소감은 어떠한지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꿈 워크숍’이라고 했을 때 정말 꿈이라는 게 어려웠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슬픈거에요. 뭔가 초등학생 때 ‘꿈이 뭐야?’라고 하면 진짜 항상 막 대통령이 되고 싶어,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랬다고 치지만 지금의 꿈은 더 깊게 고민해야돼서 그런지 꿈을 모르겠는 거에요. 그래서 ‘일단 나는 나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해보자!’해서 꿈 워크숍 때 제가 발표한 내용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관심 있는 게 뭔지, 나의 성향은 어떤지, 나의 특징은 뭔지… 그리고 현재 나의 상태는 어떤지. 결론적으로 내가 원하는 꿈은 뭔지 이야기했어요.
꿈 발표당시에는 일단 제 꿈을 ‘그냥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사실 그게 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행복하게 사는 게 그냥 나의 최종 삶의 목적이고 방향이지 그게 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꿈을 찾자는 생각이 있긴해요. 꿈 워크숍하면서 좋았던 점은 어찌되었든 저에 대해 깊게 생각을 계속 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저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은 안했는데 응진님이 본인에 대해 되기 잘 알고 계시네요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본래 저에 대한 확신을 많이 갖지 못했는데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가보다’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일을 할 때 열정도 있고,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게 있는데 1, 2년 지나고나면 기계처럼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방향을 상실해버리는 느낌. 근데 이번에 꿈 워크숍을 알게 되었으니 그럴 때마다 한 번씩 스스로 생각을 해보면 약간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을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봐줬다는 점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꿈 워크숍이 기존 계획에 없었음에도 진행했던 건 같이 무언가를 함께 해야하는데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이전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호흡을 맞춰서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거라보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프로젝트 기획 이전에 필요한 절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이어서 다음주면 [5월]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어요. 특히 5월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콜라보’, ‘협업’이에요. 4월에 먼저 지역에서의 협업을 경험해보신 입장에서 5월님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조언이라고 한다면… 사실 지역에서는 제 또래보다 나이가 좀 더 높은 분들이랑 만날 기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열린 마음이 진짜 필요한 것 같고, 그리고 뭔가 딱딱 정확하게 나눠서 진행한다기 보다는 그냥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먼저 찾는 것. 그리고 먼저 제안하는 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해져 있는 대로만 하려고 하면… 사실 정해져 있는 건 거의 없으니까(웃음) 서로 아이디어를 내며 수동적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하려고 해야될 것 같아요. 특히 5월은 괴산팀과 함께 시도하는 거니 협업하는 관계가 더 많아질 거 잖아요? 그래서 그 다양한 사람들이랑 다양한 활동을 하려면 진짜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뭔가 이렇게 딱 칼 같이 하기보다는 서로 공유하면서 한다면 다툼없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들어요.
'협업'하니까 추가로 질문을 드려보면, 서울에서 생활하실 때도 사이드 프로젝트로 협업을 해보셨잖아요. 그간 해왔던 협업경험과 장승포에서의 협업경험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자료조사하는 사람, 뭐 하는 사람 이렇게 딱딱 정하고 했었거든요. 근데 여기에서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뭔가 다 같이 일단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다 같이 뭔가 하고, 그 필요에 의해서 네가 잘하는 건 네가하고 약간 그렇게 나눠지는 느낌이라… 그 이전에 협업을 했을 때는 딱 역할을 나누고 시작했는데 결국 소통이 잘 안됐었고, 팀원 중에 두 명은 그만둬서 남은 사람들끼리 다시 해야하다보니 결국 그냥 같이 다 하게 되어버린거죠. 뭔가 업무 분장이 칼 같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어느정도 초반에 (눈높이, 호흡이)다져진 다음에 서로에 대해 알고 그 다음에 업무 분장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해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제가 잘하는 건 이거예요.’하면서 나누는 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메이커스캠프의 문을 활-짝 열었으니, 이제 크고 작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지 않을까합니다. 앞으로의 메이커스캠프는 어떤 공간이 되면 좋을지, 그리고 어떤 분들이 오면좋을지… 오픈메이커 4월님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이곳(메이커스캠프)이 청년 공간이긴 하잖아요. 사실 제가 이곳에서 근처를 돌아봤을 때 장승포는 청년들이 모일 만한 놀거리나 장소가 부족한 것 같았어요. 어찌되었든 메이커스캠프가 그 시작점이니 분명 이 지역에도 청년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청년들이 커뮤니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실크스크린, 미싱할 줄아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걸 활용해서 동네에서 플리마켓을 한다던지… 서로의 재능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아니면 친목도모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고 해서 시도해봐도 되는 거고요. 사실 청년들뿐만 아니더라도 나이드신 분들 중에서도 미싱을 다룬다던지 등 능력이 있으신데 은퇴하고 쉬고 계신 분들이 있을텐데 그런 분들이 ‘누구나 선생님’처럼 강사가 되어서 원데이 클래스나 재능기부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재능기부를 청년들이 수강해도 되는 거고요. 뭔가 그런게 활성화 되면 좋겠어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진짜 다 같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그럼 3주간 함께했던 로컬호스트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to. 밗본 :
밗본님은 제 기준이지만 넌무 멋있으세요. 삶이. 진짜 멋있어요. 그리고 밗본님이랑 얘기를 하면 내용이 어려울 때가 많긴 하거든요. 근데 그 어려움이 기분 나쁜 어려움이 아니라 계속 물음표에요. 밗본님이랑 대화하고 숙소로 돌아가면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겨서 계속 생각을 하게되는 거예요. 전 이런 게 되게 좋거든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단 말이에요. 뭔가 내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워주는 사람? 심지어 말도 많이 재미있게 해주시잖아요. 저는 밗본님, 쏜바님이랑 셋이서 술 먹었을 때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결론은)밗본님은 진짜 멋있으시다!(웃음)
to. 응진 :
나이를 듣고 정말 놀랐는데 이 일을 정말 일찍 시작하신거잖아요. 심지어 막 이 일을 시작하셨을 당시인 8, 9년전에는 지역활성화라는 영역은 거의 무(無)상태였을 것 같거든요. 거의 불모지인거죠. 근데 부산에서 일을 시작해서 장승포라는 곳에 거점을 두고 하시는 게 진짜 멋있는 것 같고, 꿈 발표를 하실 때도 계속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현실에 안주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꿈 워크숍 때 ‘가슴 뛰는 일을 찾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실 그말을 들으면서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근데 대표님이시다보니 전화하고, 바쁘셔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좀 아쉬웠어요.
to. 강군 :
사실 강군님하면 ‘망산’밖에 안 떠올라서 ㅋㅋ… 처음에는 강군님 표정이 별로 없으셔서 약간 무섭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은근 계속 챙겨주시려하고, 어찌되었든 망산이 저한테는 되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힘들어서 기억에 남는 것도 있는데 편한 길을 갔더라면 이렇게까지 기억에 남지는 않았겠죠. 산을 올랐다가 내려갔다가 반복하는데 비도 맞으면서 했잖아요. 근데 그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산행 끝나고 엄지발가락에 멍이 들었는데 ‘헐 어떡해’가 아니고 ‘기특해’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영광의 상처같았고, 심지어 아프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유혜민 그래도 한 번 했네’라는 느낌에 가까웠고, 그래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신 강군님, 감사합니다.
to. 도사 :
도사님이랑은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도 나중에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찌되었든 그때 종현님이 해주신 이야기들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고, 공감도 되었어요. 지금 새로운 걸 하고 계시잖아요? 저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상태이지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은 없거든요. 도사님도 아이템이 구체적으로 없었고 구체화하는데 오래걸렸는데 진짜 하시고 싶은 게 생기니까 엄청 바로 팍하고 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뭔가 한 번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고. 또 낚시 갔을 때도 그렇고 잘 챙겨주시려고 해주셔서 다들 감사하네요.
to. 쏜바 :
쏜바님이랑 시간을 진짜 많이 보낸 것 같아요. 오픈식 준비하면서도 가장 많이 시간을 보냈고 얘기도 많이 하고 했는데 일단 쏜바님도 멋있어요. 사실 저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잖아요. 근데 일 경력으로만 거의 4년차이시고 사실 뭔가 저는 일을 하면 막 정해서, 순서에 맞춰서 해야하고 미리미리 해야되고 그런게 엄청 강했는데 쏜바님이 ‘그냥 하면되죠’하면서 뚝딱뚝딱 바로 뭔가 나오고, 전시 판넬도 뚝딱나오고 되게 순차적으로 타다다다닥 나와서 사실 그점이 되게 멋있었어요. 그래서 일당백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쏜바님이 일러스트레이터(디자인툴) 프로그램 쓰는 거 보니까 저도 너무 배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서울 돌아가면 학원에서 배워야지 하면서 벌써 등록도 했고, 어찌되었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것 같아요.
▶▶ 「 하이퍼로컬-지역살이 : [4월]님으로부터 」 끝